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위에는 얼마나 많은 이름들이 숨겨져 있을까요. 단순히 사람을 부르는 호칭을 넘어, 제가 살아온 발자취, 그리고 제 안의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감정들까지도 이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존재합니다. 때로는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 때로는 낯설기만 했던 풍경들이 이름을 통해 제게 다가오기도 하죠. 오늘은 제가 살아온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 특별한 이름들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멱바우’와 ‘땅깨미’ : 투박함 속에 깃든 따뜻한 추억
얼마 전, 잊고 있었던 지명 하나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바로 ‘멱바우’. 이름만 들어도 왠지 모르게 정겨운 이 지명은, 아마도 미역이 많이 자라던 바위나,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멱을 감으며 뛰놀았던 추억이 깃든 바위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오래도록 사용해온 블로그 닉네임 ‘땅깨미’와도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박하지만 흙내음 가득한 ‘땅깨미’라는 이름처럼, ‘멱바우’ 역시 거친 자연 속에서 피어난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듯했습니다.
저는 이 ‘땅깨미’라는 이름을 통해 제가 밟고 살아온 땅의 기억들을 풀어놓곤 했습니다. 때로는 묵묵히 짐을 싣고 도로를 누비는 화물차 운전사의 고단함을, 때로는 그 속에서도 발견하는 소소한 풍경들의 아름다움을 말이죠. ‘땅깨미’는 단순히 저를 지칭하는 단어를 넘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특별한 창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을차마루’와 ‘자연자연여행’ : 고단함을 딛고 피어난 나만의 세계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꿈꾸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14톤 트럭의 묵직한 짐을 싣고 달리면서도, 제 마음속으로는 늘 ‘여행자’였습니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삭막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도 나만의 낭만을 찾아 헤매곤 했죠.
그렇게 탄생한 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을차마루’입니다. ‘을차’에서 느껴지는 힘찬 기운과, ‘마루’가 품고 있는 산마루, 하늘마루와 같은 굳건함이 제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넷상에서 ‘을차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면, 저는 잠시 14톤의 무게를 내려놓고 제 안의 영웅이 되어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첫 유튜브 채널 이름, ‘자연자연여행’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했습니다. ‘여행자’라는 마음으로, 팍팍한 현실을 ‘자연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여정으로 바꾸고 싶었습니다. 좁은 운전석은 곧 드넓은 자연을 향해 열린 창문이 되었고, 매일 달리는 도로는 ‘자연’으로 향하는 특별한 길이 되었습니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저만의 ‘철학자의 자세’이자,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삶의 기술’이었던 셈이죠.
이름, 나를 지키고 미래를 창조하는 힘
세상이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낯선 현실에 가두려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만의 이름을 짓고,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을차마루’라는 이름처럼, ‘자연자연여행’이라는 새로운 제목처럼 말입니다.
저는 오늘도 제 안의 ‘여행자’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고단할 때, 마음의 핸들을 ‘여행’으로 꺾는 자는 더 이상 짐꾼이 아니라 길 위의 예술가라는 것을요. 지명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지키는 일이고, 새로운 이름을 짓는 것은 미래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도 되새깁니다.
오늘, 제가 살아온 이야기 속 이름들에 대한 짧은 여정이 여러분에게도 작은 영감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도 숨겨진 이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이름들을 통해 여러분 안의 진짜 자신을 마주하고, 더욱 풍요로운 내일을 만들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